갤러리헤아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구상회화작가 아르노부에이와 서울에서 흙을 바탕으로 기(器)와 오브제를 만드는 이혜미의 협업전이다. 서로 다른 토양의 어우러짐을 뜻하는 프랑스어 <테르멜레(Terre Mêlée)>는 각자의 문화와 공간에서 예술성을 발현해 온 예술가의 영혼이 전시를 통해 하나로 융합됨을 의미하고 있다. 갤러리헤아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는 처음으로 아르노부에이를 소개한다.
아르노부에이는 자신을 둘러싼 풍경들을 캔버스에 유화로 담아내는 회화작가이다. 프랑스인 건축가의 아들로 태어나 이탈리아 출신어머니를 따라 토스카나의 풍경 속에서 매해 여름을 보냈고 파리에서 예술을 전공했다. 이후 나폴리로 거처를 옮긴 아르노부에이는 파리의 초현실적인 파란 하늘보다도 더 푸르른 나폴리의 하늘을 캔버스에 담으며 투명하고도 찬란한 빛깔이 하늘에서 바다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이름으로 고정 지을 수 없는 나폴리의 다채로운 색들이 붓끝에서 화폭으로 옮겨지는 사이 그의 영혼은 포도 넝쿨처럼 풍성한 색채로 가득 차올랐다. 그는 일상 가운데 아름다운 조형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으로, 통상적인 풍경 속에서도 명료한 건축의 선과 생명 있는 것들의 자유로움, 빛의 세밀한 단계들을 포착해 캔버스로 옮겨 온다. 발 디딘 곳의 풍경을 진하게 사랑하되 차분하게 응대하는 태도로 완성된 작품들. 그가 담은 것들은 모두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순간들이다. 아르노부에이는 자신이 바라본 아름다움을 사실적 방식으로 재현하며 프랑스와 나폴리 등지에서 꾸준히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이혜미 작가는 흙을 소재로 조형 작업을 한다. 손으로 흙을 빚어 굽고 유약을 발라 다시 구운 뒤 그 위에 은을 수행하듯 덧입힌다. 여러 번 칠을 올리는 상회작업을 거치고 나면 작품 특유의 은은하고도 우아한 빛깔을 만날 수 있다. 색 있는 것이 정제된 색감으로 녹아들고, 장식적인 요소가 단정한 곡선으로 스미기까지, 작가에게 체득된 아름다움은 숙고의 시간을 거친다. 그녀는 오래되고 익숙한 것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자신이 받아들인 아름다움을 은유로 풀어낸다. 그렇게 소화된 미감은 테이블 위를 밝히거나 공간을 채우는 하나의 오브제로 기능한다. 흙이라는 것이 결과물을 한정할 수 없는 소재이듯, 작가 또한 작품의 쓰임을 한정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작가의 손을 떠나 쓰이는 작품들을 보면 그 모든 풍경이 다채롭다. 마침내 놓인 자리에서 완성에 이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혜미 작가의 작업은 정제된 조형 안에 풍경을 끌어안는 넉넉함을 담으며 영롱하게 빛난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로의 작품에 영감을 받아 새롭게 제작된 신작들과 기존 작품들이 함께 전시된다. 아르노부에이는 이혜미의 플레이트 작업을 고전적 방식의 정물로 탐구하여 본인만의 스타일로 캔버스 위에 구현했다. 아르노부에이 특유의 색감과 조도가 이혜미의 플레이트를 부드럽게 받혀 올리며 실제 조형이 갖는 우아함과 찬연함을 드러낸다. 이혜미는 아르노부에이가 그려낸 풍경 속에서 클래식한 이탈리아 자(jar)를 발견하고 이를 현실로 끌어냈다. 승리의 트로피처럼 보이기도 하고 종교적 장식품 같기도 한 이탈리아 자는 이혜미의 미감을 입어 지금 이 시대의 오브제로 되살아난다. 단순한 형태 모방으로 그치지 않고 대상을 흥미롭게 탐구해 재해석한 결과이다. 이 오브제는 마치 시간의 띠 위에 올려져 있는 듯 보인다. 과거의 유물, 거기로부터 영감을 받은 지금의 작품, 이 작품에 영향을 받을 미래의 작품이 하나의 띠 위에 있다.
아르노부에이와 이혜미가 서로의 작업 공간에서 서로의 작품을 대면하는 침묵의 시간부터 두 예술가의 영혼은 융합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아르노부에이는 그녀의 플레이트를 앞에 두고, 이혜미는 그가 그린 풍경 속 이탈리아 자를 탐구하며, 말없이 대화를 이어갔을 것이다. 어떤 흔적은 입에서 나오는 확언보다도 타당한 증거가 된다. 세상을 표현하는 장르는 다르지만 아름다움을 맞이하는 두 예술가의 태도와 감각이 닮았음을 그들의 작품 속에서 발견한다. 아르노부에이는 이혜미의 찻잔에 담긴 이탈리안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것이 하나의 형이상학적 경험과 같았다고 회고한다. 이는 이번 전시를 함축하는 하나의 장면이기도 할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와 공간에서 자신의 예술을 발현해 온 두 예술가의 영혼은 이렇게 어우러지고 있다.
Terre Mêlée
Arno Boueilh X Heami Lee
2023. 10. 22 - 2023. 11. 4
마음으로 흐르고, 또 어우러지는
이지원
갤러리헤아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구상회화작가 아르노부에이와 서울에서 흙을 바탕으로 기(器)와 오브제를 만드는 이혜미의 협업전이다. 서로 다른 토양의 어우러짐을 뜻하는 프랑스어 <테르멜레(Terre Mêlée)>는 각자의 문화와 공간에서 예술성을 발현해 온 예술가의 영혼이 전시를 통해 하나로 융합됨을 의미하고 있다. 갤러리헤아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는 처음으로 아르노부에이를 소개한다.
아르노부에이는 자신을 둘러싼 풍경들을 캔버스에 유화로 담아내는 회화작가이다. 프랑스인 건축가의 아들로 태어나 이탈리아 출신어머니를 따라 토스카나의 풍경 속에서 매해 여름을 보냈고 파리에서 예술을 전공했다. 이후 나폴리로 거처를 옮긴 아르노부에이는 파리의 초현실적인 파란 하늘보다도 더 푸르른 나폴리의 하늘을 캔버스에 담으며 투명하고도 찬란한 빛깔이 하늘에서 바다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이름으로 고정 지을 수 없는 나폴리의 다채로운 색들이 붓끝에서 화폭으로 옮겨지는 사이 그의 영혼은 포도 넝쿨처럼 풍성한 색채로 가득 차올랐다. 그는 일상 가운데 아름다운 조형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으로, 통상적인 풍경 속에서도 명료한 건축의 선과 생명 있는 것들의 자유로움, 빛의 세밀한 단계들을 포착해 캔버스로 옮겨 온다. 발 디딘 곳의 풍경을 진하게 사랑하되 차분하게 응대하는 태도로 완성된 작품들. 그가 담은 것들은 모두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순간들이다. 아르노부에이는 자신이 바라본 아름다움을 사실적 방식으로 재현하며 프랑스와 나폴리 등지에서 꾸준히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이혜미 작가는 흙을 소재로 조형 작업을 한다. 손으로 흙을 빚어 굽고 유약을 발라 다시 구운 뒤 그 위에 은을 수행하듯 덧입힌다. 여러 번 칠을 올리는 상회작업을 거치고 나면 작품 특유의 은은하고도 우아한 빛깔을 만날 수 있다. 색 있는 것이 정제된 색감으로 녹아들고, 장식적인 요소가 단정한 곡선으로 스미기까지, 작가에게 체득된 아름다움은 숙고의 시간을 거친다. 그녀는 오래되고 익숙한 것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자신이 받아들인 아름다움을 은유로 풀어낸다. 그렇게 소화된 미감은 테이블 위를 밝히거나 공간을 채우는 하나의 오브제로 기능한다. 흙이라는 것이 결과물을 한정할 수 없는 소재이듯, 작가 또한 작품의 쓰임을 한정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작가의 손을 떠나 쓰이는 작품들을 보면 그 모든 풍경이 다채롭다. 마침내 놓인 자리에서 완성에 이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혜미 작가의 작업은 정제된 조형 안에 풍경을 끌어안는 넉넉함을 담으며 영롱하게 빛난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로의 작품에 영감을 받아 새롭게 제작된 신작들과 기존 작품들이 함께 전시된다. 아르노부에이는 이혜미의 플레이트 작업을 고전적 방식의 정물로 탐구하여 본인만의 스타일로 캔버스 위에 구현했다. 아르노부에이 특유의 색감과 조도가 이혜미의 플레이트를 부드럽게 받혀 올리며 실제 조형이 갖는 우아함과 찬연함을 드러낸다. 이혜미는 아르노부에이가 그려낸 풍경 속에서 클래식한 이탈리아 자(jar)를 발견하고 이를 현실로 끌어냈다. 승리의 트로피처럼 보이기도 하고 종교적 장식품 같기도 한 이탈리아 자는 이혜미의 미감을 입어 지금 이 시대의 오브제로 되살아난다. 단순한 형태 모방으로 그치지 않고 대상을 흥미롭게 탐구해 재해석한 결과이다. 이 오브제는 마치 시간의 띠 위에 올려져 있는 듯 보인다. 과거의 유물, 거기로부터 영감을 받은 지금의 작품, 이 작품에 영향을 받을 미래의 작품이 하나의 띠 위에 있다.
아르노부에이와 이혜미가 서로의 작업 공간에서 서로의 작품을 대면하는 침묵의 시간부터 두 예술가의 영혼은 융합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아르노부에이는 그녀의 플레이트를 앞에 두고, 이혜미는 그가 그린 풍경 속 이탈리아 자를 탐구하며, 말없이 대화를 이어갔을 것이다. 어떤 흔적은 입에서 나오는 확언보다도 타당한 증거가 된다. 세상을 표현하는 장르는 다르지만 아름다움을 맞이하는 두 예술가의 태도와 감각이 닮았음을 그들의 작품 속에서 발견한다. 아르노부에이는 이혜미의 찻잔에 담긴 이탈리안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것이 하나의 형이상학적 경험과 같았다고 회고한다. 이는 이번 전시를 함축하는 하나의 장면이기도 할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와 공간에서 자신의 예술을 발현해 온 두 예술가의 영혼은 이렇게 어우러지고 있다.
Installation View
Artworks
© Arno Bouei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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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ami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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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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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d Artist
아르노부에이
이탈리아 나폴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프랑스 출신의 구상화가. 프랑스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파리 보자르와 아르데코 학교에서 예술 공부를 마쳤다. 이후 이탈리아 나폴리로 이주해 나폴리를 비롯한 토스카나의 풍광에 영감을 받으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식물 등의 일상 오브제부터 바닷가의 색채, 근대 건물의 형태 들을 주된 소재로 하여 회화 작업을 한다. 작가는 자신에게 내재된 색감을 대상과의 차분한 응대를 통하여 캔버스 위로 이끌어내고 이를 조형미있게 구현한다. 북방색채에 더해진 나폴리의 다정하고 달콤한 남빛 물결은 그의 작업에 관상학적 특징을 더한다. 아르노부이에는 아름다운 색상감각과 건축가적인 조형감각으로 일상적인 것을 새롭게 보는 시선을 제안한다. 그가 성실하게 대면한 풍경들은 관람객들에게 다채로운 색감과 따뜻한 온기를 갖고 다가가 대상이 주는 아름다움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이혜미
서울에서 거주하며 흙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물성을 탐구한다. 쓰임에 구애 받지 않는 오브제를 만들며, 자기 위에 은을 올리는 기법을 통해 시간에 대한 존중을 담아낸다. 조형을 빚고, 굽고, 은을 반복적으로 올리는 과정을 거쳐 응축된 아름다움과 유연한 형태를 표현하고 있다. 작품은 공간의 습도와 온도에 반응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작가와 관객 사이 자연스러운 연결을 형성하면서 세상 단 하나뿐인 존재로 완성된다.
Featured Artist
아르노부에이 Arno Boueilh
이탈리아 나폴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프랑스 출신의 구상화가. 프랑스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파리 보자르와 아르데코 학교에서 예술 공부를 마쳤다. 이후 이탈리아 나폴리로 이주해 나폴리를 비롯한 토스카나의 풍광에 영감을 받으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식물 등의 일상 오브제부터 바닷가의 색채, 근대 건물의 형태 들을 주된 소재로 하여 회화 작업을 한다. 작가는 자신에게 내재된 색감을 대상과의 차분한 응대를 통하여 캔버스 위로 이끌어내고 이를 조형미있게 구현한다. 북방색채에 더해진 나폴리의 다정하고 달콤한 남빛 물결은 그의 작업에 관상학적 특징을 더한다. 아르노부이에는 아름다운 색상감각과 건축가적인 조형감각으로 일상적인 것을 새롭게 보는 시선을 제안한다. 그가 성실하게 대면한 풍경들은 관람객들에게 다채로운 색감과 따뜻한 온기를 갖고 다가가 대상이 주는 아름다움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이혜미 Heami Lee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흙을 베이스로 용도에 한정되지 않는 오브제와 테이블웨어를 제작한다. 그의 작업은 과일이나 식물을 담아내는 쓰임을 가지기도 하고 오브제 자체가 하나의 조형이 되어 훌륭하게 공간을 채우기도 한다. 풍경과의 조우는 오브제를 더 영롱하게 만들며 마침내 놓여진 자리에서 작업의 완성에 이른다. 이혜미는 선조들의 과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존경한다. 소박한 아름다움이야말로 절제된 형태의 미감이라 생각하며 오래되고 익숙한 것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시간을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자기 위 은채로 작업하는 주된 기법은 시간을 존중하는 작가의 의도를 함축한다. 작가는 매 작업마다 직접 흙을 만져 자연스러운 질감을 살린 뒤 그 위로 은을 켜켜이 쌓아올린다. 이는 행위를 통해 온전히 시간을 쌓는 것이며 응축된 아름다움과 유연한 우아함을 담아내는 과정이다. 이혜미의 작업은 정제된 조형 안에 풍경을 끌어안는 넉넉함을 담으며 세라믹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나폴리에서 활동 중인 프랑스 출신 회화작가 아르노부에이(Arno Boueilh)와 서울에서 세라믹 오브제 작업을 주로 하는 이혜미가 <테르밀리 Terre Mêlée> 협업전을 열었다.
프랑스어 <테르밀리 Terre Mêlée>는 ‘서로 다른 지역의 토양이 혼합되었다’는 뜻으로, 두 아티스트의 협업을 뜻한다. 이 조화로운 단어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구상회화작가 아르노부에이(Arno Boueilh)와 서울에서 흙을 바탕으로 기(器)와 오브제를 만드는 이혜미의 협업을 의미하는 제목이기도 하다.
<테르밀리 Terre Mêlée>는 도자기 오브제에서는 서로 다른 색상의 두 가지 점토를 혼합하여 대리석 효과를 얻는 것으로 구성된다. 이 기법은 꽃병, 그릇, 접시, 찻잔 등과 같은 세라믹 물체를 만드는 데 자주 사용된다.
페인팅 및 세라믹 오브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10월 22일 오프닝을 시작으로 11월 4일까지 한겨레신문사 위쪽 효창공원 후문 마을버스 정류장에 위치한 갤러리헤아에서 진행된다.
이혜미의 작품은 은(銀)을 덧칠한 항아리 특유의 농담(濃淡)이 묻어나는 은은하고도 우아한 빛깔이 정제된 조형 안에서 풍경을 끌어안는 넉넉함을 담으며 영롱하게 빛난다.
아르노부에이 작품에서는 나폴리의 파란 하늘을 캔버스에 담으며 투명하고도 찬란한 빛깔이 하늘에서 바다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그는 나폴리의 다채로운 색들을 붓끝에서 화폭으로 옮겨, 넝쿨처럼 풍성한 색채를 캔버스에 담았다.
세라믹 오브제 작가 이혜미는 2019년 9월 프랑스 남부 해안을 여행하던 중 에머랄드 바닷물에 영롱하게 반짝이는 찻잔을 발견하고 자신의 작품에 그 순간의 영감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이혜미 작가는 흙을 소재로 조형 작업을 한다. 손으로 흙을 빚어 굽고 유약을 발라 다시 구운 뒤 그 위에 은(銀)을 수행하듯 반복해서 덧입힌다. 여러 번 칠을 올리는 800도 상회작업을 거치고 나면, 은(銀)을 무한 덧칠한 항아리 작품 특유의 농담(濃淡)을 만날 수 있다.
색 있는 것이 정제된 색감으로 녹아들고, 장식적인 요소가 단정한 곡선으로 스미기까지, 작가에게 체득된 아름다움은 숙고의 시간을 거친다. 그녀는 오래되고 익숙한 것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자신이 받아들인 아름다움을 은유로 풀어낸다. 그렇게 소화된 미감은 테이블 위를 밝히거나 공간을 채우는 하나의 오브제로 기능한다.
흙이라는 것이 결과물을 한정할 수 없는 소재이듯, 작가 또한 작품의 쓰임을 한정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작가의 손을 떠나 쓰이는 작품들을 보면 그 주변 풍경이 다채롭다. 마침내 놓인 자리에서 작품은 완성에 이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르노부에이는 프랑스인 건축가의 아들로 태어나 이탈리아 출신인 어머니를 따라 여름이면 토스카나의 풍경 속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파리에서 예술을 전공했다.
나폴리로 거처를 옮긴 그는 파리의 파란 하늘보다도 더 푸르른 나폴리의 하늘을 캔버스에 담으며 투명하고도 찬란한 빛깔이 하늘에서 바다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는 일상 가운데 아름다운 조형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으로, 통상적인 풍경 속에서도 명료한 건축물의 선과 생명 있는 것들의 자유로움, 빛의 세밀한 단계들을 포착해 캔버스로 옮겨 온다. 발 디딘 곳의 풍경을 진하게 사랑하되 차분하게 응대하는 태도로 완성된 작품들. 그가 담은 것들은 모두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순간들이다. 아르노부에이는 자신이 바라본 아름다움을 사실적 방식으로 재현하며 프랑스와 나폴리 등지에서 꾸준히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작업적 토양은 서로의 작업 안으로 섞여 들어간다. 이혜미의 오브제는 아르노의 회화 안으로 들어가고 아르노의 회화 속 오브제는 이혜미의 물성을 입고 이 세계로 나온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들의 작업은 서로의 형식을 오고 가며 서로가 발견한 동질의 감각을 보여준다. 그들이 존중하는 아름다운 색감, 차분히 쌓아나가는 것에서 오는 온기, 성심으로 작업을 매만져 빛을 발하는 영롱함까지. 아르노부에이와 이혜미의 마음의 물결은 단아한 태도를 넘어 <테르밀리 Terre Mêlée> 영혼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간다.
아르노부에이와 이혜미의 협업전인 <테르밀리 Terre Mêlée> 전시에서는 서로의 작품에 영감을 받아 작업한 신작과 기존 작품들이 함께 전시된다.
아르노부에이는 이혜미의 플레이트 작업을 고전적 방식의 정물로 탐구하여 본인만의 스타일로 캔버스 위에 구현했다. 아르노부에이 특유의 색감과 조도가 이혜미의 플레이트를 부드럽게 받혀 올리며 실제 조형이 갖는 우아함과 찬연함을 드러낸다.
이혜미는 아르노부에이가 그려낸 풍경 속에서 클래식한 이탈리아 자(jar)를 발견하고 이를 현실로 끌어냈다. 승리의 트로피처럼 보이기도 하고 종교적 장식품 같기도 한 이탈리아 자는 이혜미의 미감을 입어 지금 이 시대의 오브제로 되살아난다.
단순한 형태 모방으로 그치지 않고 대상을 흥미롭게 탐구해 재해석한 결과이다. 이 오브제는 마치 시간의 띠 위에 올려져 있는 듯 보인다. 과거의 유물, 거기로부터 영감을 받은 지금의 작품, 이 작품에 영향을 받을 미래의 작품이 하나의 띠 위에 있다.
아르노부에이와 이혜미가 서로의 작업 공간에서 서로의 작품을 대면하는 침묵의 시간부터 두 예술가의 영혼은 <테르밀리 Terre Mêlée>, 이질적 융합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아르노부에이는 그녀의 플레이트를 앞에 두고, 이혜미는 그가 그린 풍경 속 이탈리아 자(jar)를 탐구하며, 말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협업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어떤 흔적은 입에서 말로 하는 확언보다도 타당한 증거가 된다.
세상을 표현하는 장르는 다르지만, 초자연의 빛과 열을 시간의 아름다움으로 승화한 두 예술가의 태도와 감각이 닮았음을 그들의 작품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아르노부에이는 이혜미의 찻잔에 담긴 이탈리안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것이 하나의 형이상학적 경험과 같았다고 회고한다. 이는 이번 전시를 함축하는 하나의 장면이기도 할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와 공간, 시공간 속에서 자신의 예술을 발현해 온 두 예술가의 영혼은 이렇게 어우러지고 있다.
<테르밀리 Terre Mêlée> 전시회는 우연한 계기로 서로의 작업 안에서 닮은 감각을 찾아낸다. 회화와 세라믹오브제로 장르적 형태는 다르지만 대상을 바라보는 섬세한 감각이나 작품에서 발현되는 영롱함이 동일한 감각을 일깨웠던 것이다.
기사 원문 보기 > 르몽드디플로마티크